[기타][변신] by.프렌츠 카프카

송진호
2022-06-21
조회수 931



📓「변신」
✍🏻 프란츠 카프카(1912)
📇 문학동네
📖 137페이지

"사람이 어느 날 벨레로 변해버린다면・・・"

이 짧은 분량에 이만한 스토리를 온전히 녹여냈다는 점에서 경외감이 들었다. 도입부부터 몰입하여 읽었는데,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가 가족들로부터 ‘인간만도 못한벌레’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포인트는 그레고리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에 있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레고리를 사람으로, 아들로, 오빠로 생각했다. 그레고리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이었다. 비록 곤충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스포일러 방지••

‘벌레가 된 인간’이라는 설정은 지극히 허구지만, 스토리 전개는 극히 사실적으로 이뤄진다. 벌레가 된 어느 날 아침에도 그레고리는 자신이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 갈 것임에 한 치의 의심조차 없었다. 갑자기 말도 안되게 자신이 벌레로 변해버린 것이었으므로. 단지 시간이 문제였다. 언제 되돌아갈지 알 방법이 없었으니.
그렇기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걱정 조차도 굉장히 현실적이다. ‘당장 오늘 출근은 어쩌지, 회사에는 뭐라고 말하지’ 자신이 벌레가 되었음에도 그레고리는 직장 걱정이 우선이었다. 4인 가족의 생계를 오롯이 본인이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흉측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가족들이 패닉에 빠지자 그레고리는 '이럴때일수록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며 거꾸로 냉정해질 수 있었다.

형편은 점 점 더 어려워지고 가족들은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만 했다. 연로한 아버지와 천식을 앓는 어머니, 17살의 어린 여동생.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그레고리가 사라진 지금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집을 팔아 작은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레고리 때문에 불가능했다. 각자 현실의 변화에 적응하자 그레고리는 경제적 가장의 자리를 잃게 되었다. 나아가, 가족 구성원으로서 실존적 위치까지도 상실하게 된다.
오직 그레고리 등에 박혀있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만이 그레고리가 가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 듯 했다.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르자, 그레고리에 대한 가족들의 인식에 변화가 찾아왔다. 그레고리는 이제 가족에게도 사람이지만 벌레인, 아들이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 사정이 궁핍해지자 빈 방 몇 개를 세 놓았는데, 어느 날 하숙인들이 그레고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어지는 여동생의 말은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 우리가 저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동안 저것을 돌보고 참아내기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어요. 우리를 조금이라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p.111)

🔖 “우리는 이제 벗어나야 해요.” “저 괴물은 틀림없이 두 분을 돌아가시게 할 거예요. 뻔하다구요. 우리처럼 이렇게 힘겹게 일해야 하는 처지에 집에서마저 이런 끝없는 고통을 겪으며 산다는 건 정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에요. 저도 이젠 더이상 참을 수 없어요.”

🔖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좋겠니?” “만일 저 애가 우리 말을 알아듣는다면…” “우리가 자기와 같은 짐승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제 발로 나가주었을 거예요.”(p.114)

🔖 방 안에 갇힌 그레고리는 기분이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다. 온 몸에 통증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차차 약해쟈서 마침내는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아마 여동생보다 그 자신이 더욱 단호할 것이다. 탑시계가 세시를 칠 때까지 그는 이렇게 공허하고도 평화로운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그레고리는 죽음을 맞이했다.(p.117)



그레고리의 죽음을, 가족들의 태도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가족들도 너무 힘들었을 것 같고,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이는 그레고리에게도 공감이 간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그레고리의 죽음이, 모든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내 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레고리의 쓸쓸하고 초라한 죽음이 어째서 해피엔딩으로 비춰져 보이는걸까.

사실 어제 바퀴벌레를 봤는데 죽이지를 못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밟아 죽이려고 했는데 그레고리가 떠올랐고, 측은지심이 들었다. 내가 진심으로 무언가의 죽음을 바란다는 사실이 보통의 혐오감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그 사람이 가진 역할과 책임, 의무와 사명을 너무 크게 보지 말아야겠다. 하나의 조각이 아닌 하나의 존재로서 대하는게 당연해 질 때까지.

어느 날 눈 떴을 때, 벌레가 되어 있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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